스포츠 영화는 뻔하다. 한국 스포츠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는 이야기! 시작은 미약하였으되 그 끝도 역시 심히 미약할 수밖에 없는 선수들의 마지막 승부! ‘각본 없는 드라마’의 세계를 그려내는 스포츠 영화는 늘 이렇게 정해진 각본에 따라 똑같은 코스를 달려 나간다.
<국가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때는 1996년. 장소는 전라북도 무주. 겨울 올림픽 유치를 신청하면서 국내 겨울 스포츠 저변이 넓은 것처럼 눈속임하려고 스키점프 팀을 급조한다.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가 어영부영 코치를 맡고, 각자 다른 사연을 간직한 채 눈밭에서 멀어진 전직 스키 선수 다섯 명을 끌어모아 스키 점프대로 등을 떠민다. 인생에서는 볼썽사나운 모양새로 추락했지만 적어도 스키점프에서만은 사뿐하게 착지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마침내 기회가 찾아오고 기적도 일어난다.
<국가대표>는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했다. 정식 등록 선수가 고작 일곱 명. 그중 네 명이 태극 마크를 달고 뛰는 대한민국 스키점프의 열악한 현실. 변변한 경기장도 없고 보러 오는 관중도 없고 협회 지원도 없는 3중고 속에서 영화가 보여줄 이야기라는 게 뻔해 보였다. ‘헝그리’ 정신을 ‘앵그리’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훈련 과정이 절반일 것이고, ‘최악’의 여건에서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경기 장면이 절반일 것이다. 여기에, 처음부터 ‘최고’는 아니었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의 뒷모습으로 승부할 라스트 신이 따라 나올 것은 안 봐도 비디오. 걱정을 많이 하면서 극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더 많은 걱정을 짊어진 채로 극장을 나왔다.
이렇게 뻔한 소재를 재료 삼아서 이 정도로 상큼한 영화로 맛있게 구워낸 감독의 요리 솜씨를 어떻게 칭찬하는 게 좋을까? 대한민국 스키점프의 열악한 현실에 분풀이라도 하듯이, 아주 작심하고 찍어낸 경기 장면의 호쾌한 스펙터클은 또 어떻게 묘사하는 게 좋을까?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지 않으면서도 슬쩍 눈가를 훔치게 만들고, 웃음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어느새 입 꼬리가 귀에 걸리게 만드는 이 즐거운 영화를, 아니 그래서 대체 어떻게 소개해야 남들도 보고 싶어질까? 내 돈 들여 만든 영화도 아니면서, 한 주 내내 그런 걸 걱정하며 살게 만든 영화였다, <국가대표>는.
‘뻔하지 않은’ 스포츠 영화
김용화 감독은 <미녀는 괴로워>를 통해서 세련된 대중 상업 영화 연출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사람이다(그 뒤 그런 재능을 보여준 영화는 <과속 스캔들> 정도다). <국가대표>에서도 그 솜씨는 여전하다. 다른 스포츠 영화가 하는 짓은 빠짐없이 따라 하면서도(이번에도 어김없이 코치에게는 엄마 없이 자란 미모의 딸이 하나 있다) 다른 한국 스포츠 영화가 쉽게 따라 하지 못하도록 세련되고 깔끔하게 슬쩍 남보다 한 계단 더 밟고 올라선다. 기대 이상의 박진감을 담아낸 스키점프 경기 장면에서는, 더 이상 스포츠 영화의 탈을 쓴(?) 휴먼 신파 드라마에 만족할 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도 제대로 된 스포츠 영화 한 편 만들 때가 되었다는 야심까지 엿보인다.
스포츠 영화는 뻔하다. 하지만 <국가대표>는 뻔한 한국(!) 스포츠 영화로 주저앉지 않았다. 스키점프에 비유하자면, 다소 불안하게 출발하지만 곧 안정된 자세를 찾고 기대 이상으로 멀리 날아가서 욕심내지 않고 안전하게 착지하는 영화. 손발이 오그라드는 몇 장면만 잘 견디고 나면, 그 오그라든 손을 쭉 펴서 기쁘게 박수 쳐주고 싶은 라스트 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진규
볼만한 국내산 영화, 국가대표
24회 이수현
롯데, 이제 두번다시 마산에서 야구하지 마라 
잠재의식이 성공과 실패를 만든다. 
다빈건축사사무소
